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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근대 역사의 장, 인천 개항장을 다녀오다 -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 역사 유적지 답사-

손창현
2019-10-24
조회수 242

2019 인천관광 스토리텔링 공모전 출품


■ 컨텐츠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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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답사 진행사항



일정(시간)

내용

비고


9:30 ~ 11:30

청주 출발, 인천 도착


1

11:30 ~ 12:00

인천 개항장으로 이동


2

13:00 ~ 13:30

파라다이스 호텔 - 경인선 사진

사진 1

3

13:45 ~ 14:00

차이나타운, 중식당

사진 2

4

14:20 ~ 15:00

중국 전통 가옥

사진 3,4,5

5

15:20 ~ 15:40

화교 증산 학교

사진 8

6

16:00 ~ 16:30

일본 전통 가옥, 일본식 건물

사진 6,7



Ⅱ. 주제 선정 이유

인천은 한반도의 인후부에 위치해 역사적으로 한양으로 향하는 배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장소였다. 때문에 1800년대 후반에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일본과 서양 열강들에 의해 개항장으로 개발 됐고 개항장 일대에서는 청나라, 일본, 서양 세력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러한 개항 과정은 외국 문화가 국내로 유입되는 배경이 되어 인천 개항장 일대가 근대화의 시발점이 되는 데 주요한 요인이 됐다. 이후 청, 일의 조계지가 설정되고 경인선, 인천항 갑문 등이 완성 되면서 이러한 근대화 과정은 급속도로 진행된다.

개항기부터 활기를 띠며 발전해온 차이나타운은 한국 전쟁을 겪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6,70년대 화교 제한 정책으로 침체를 겪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수의 화교들이 이 시기에 차이나타운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과의 수교를 기점으로 관광지로서 새롭게 발전하기 시작했고 현재에도 화교 2,3세대가 차이나타운에 거주하고 있다.

인천 중구 개항장 일대에는 근대화의 흔적들이 남아있어 당시의 빠른 속도로 전파되던 외세 문화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인천은 지리적 특징을 바탕으로 한 근대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들이 혼재된 근대 개항장으로서의 면모를 탐구하고자 답사 주제로 정했다.


Ⅲ. 인천 개항장 일대 - 중구 개항장을 중심으로

[사진 1] 호텔 정상에서 바라본 인천역       [사진 2] 중국과 일본 조계지 경계

1) 개항과 함께 근대화로 나아간 인천
근대의 인천은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이자 방어의 요충지로 조선을 지배하려는 세력과 조선정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공간이었다. 근대 조선은 외세에 의해 강압적으로 개방되었고, 인천은 19세기 말 러일전쟁과 같은 격동의 근대화 과정을 겪게 된다. 일본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히 우리나라를 지배하려는 야욕이 컸던 만큼 지리적 요충지인 인천을 거점으로 삼았다. 그래서 일본은 세력 확장을 위해 개항장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계지를 만들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천은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림 2에 나타난 길이 과거 청나라와 일본의 조계지를 나누던 경계이다. 자세히 보면 왼쪽과 오른쪽의 전등이 다른데, 경계를 기준으로 왼쪽이 청나라 조계지, 오른쪽이 일본의 조계지였다. 실제로 그림7(5페이지)과 같이 일본 조계지 지역엔 일본의 근대 가옥 형태가 보존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근대 넥타이, 담배, 기차, 커피, 호텔 모두 동인천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인천이 근대화의 시작이 되었음을 반증한다. 하지만 1889년에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인천항이 서울과 직접 연결되고 1910년 우리의 국권이 빼앗기고 난 뒤부터는 일제에 의해 인천항은 조선의 물자를 수탈해가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림 1’ 에 보이는 인천역에는 경인선이 연결되어 있다. 경인선은 우리나라 철도의 시작이자, 일본이 외국에 건설한 최초의 철도로 이후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경로로써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천은 인천항과 경인선의 부설을 바탕으로 19세기 말 조선 근대화의 중심지로써 거듭나게 된다.
경인선과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 철도에서 유일하게 좌측통행으로 운행된다는 점이다. 일제에 의해 축조된 경인선은 일본의 방식 그대로 축조돼 좌측통행으로 열차가 운행된다.
뿐만 아니라 경인선 근처에 위치한 인천항 역시 조선의 근대화에 앞장섰다. 서해의 경우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선박이 들어오기 쉽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일본은 1924년 축항하여 갑문을 통해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2) 인천에 중국, 일본의 문화가 유입된 배경과 모습


[사진 3] 중국 전통 주택 [사진 4] 중국 전통 주택2 [사진 5] 외벽

현재 차이나타운을 방문하면 중국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기와나 중국식 장식들은 많지만 모두 현대에 들어 ‘차이나타운’을 부각시키기 위해 설치한 장식들에 가깝다. 중국식 전통 건물을 사실상 찾아보기 쉽지 않은데 ‘그림 3’이 전통적인 중국식 전통 주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 전통 주택에서 대문을 들어가면, 하나의 벽이 더 있다. 이것은 벽사(영벽)이라고 하고 귀신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그림 4’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중국의 전통적인 중상류층 주택의 돌담이다. 이 주택은 1820년대 지어졌고, 인천에 있는 가장 오래된 중국 주택이며, 벽돌도 모두 중국에서 들여와 지은 것이다. 일반 가정집이라 집 내부까지는 살펴볼 수 없었으나 중국식 집은 담(‘그림 5’)이 높고, 폐쇄적이지만 ‘그림 3’ 과 같이 안은 넓다. 이러한 건축 양식은 중국의 담 문화로 자신들은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화주의, 천하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바둑판 모양의 석축(돌담 하단부)은 쌓기 힘들지만 튼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6] 일본 가옥 ‘마찌야                ’[사진 7] 일본조계지에 위치한 가옥들

‘그림 6’ 은 일본식 건물 중 교토형식 ‘마찌야’ 형식으로 지어졌다. 주상복합건물인 ‘팟알’ 안에 들어가면 입구를 비롯한 통로의 폭이 좁다. 일본은 폭을 가지고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에, 세금의 부담을 덜기 위해 통로의 폭을 좁힌 모습역시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주택은 폭이 좁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이 굉장히 크다. 그래서 뜰과 연결통로를 만들어 화재의 위험을 방지하려했다.
근대 개항기에서 해방까지 인천항에서 영업을 했던 하역회사 사무소 및 주택으로 활용돼 왔으며 2012년 8월 고증을 거쳐 수리를 마쳤다. 이 건물은 건립초기 19세기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근대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림 8 인천 화교 중산학교

중구 선린동에 위치한 인천화교중산학교는 지금도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교학교이다. 중국과의 수교로 대만과의 수교가 끊어지기 전 대만과의 수교상태에서 세워진 것이다. 학교는 현재까지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한국에 위치한 유일한 화교 학교로써 인천 근대화 시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 화교들의 이데올로기는 교육으로 한국과 대만의 정체성 혼란을 막기 위해 언어를 강조해서 교육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화교학교는 현재 공식적인 학력이 인정 되지 않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은 외국대학을 진학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 8] 인천 화교 중산학교


3) 인천 개항장의 현재 모습과 발전 방향

과거 인천 중구는 근대화 과정의 중심지로 번영했었지만 개항장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쇠퇴하게 되었다. 이후 이렇다 할 발전방향을 제시 하지 못하던 중구는 개항장일대에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산업 유치에 뛰어들었다. 차이나타운 조성 이전, 6,70년대에는 정부의 화교 탄압정책으로 화교를 비롯한 기존 주민들이 점점 동네를 떠나기 시작했으나 지역침체를 막기 위해 ‘차이나타운 조성’을 기획한 이후 활기를 되찾아 주변의 환경을 이용한 성공적인 투자의 예로 남아있다. 남아 있던 중국식, 일본식 건물들을 리모델링하고 박물관을 세우는 등의 노력으로 인해 현제 인천 차이나타운은 관광명소에 자리매김하였다. 중구 일대는 우리나라의 근대화의 중심지로서의 문화적 가치가 크다. 이를 활용한 근대 역사 교육 프로그램이나 특유의 고풍스런 고건물들을 활용한 문화 거리를 체계적으로 조성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의미 있는 역사적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Ⅴ. 개인 소감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에 대해 호기심이 컸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기라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사진 뿐 아니라 역사적 문화재 역시 비교적 많고 양호하게 남아 있는 점 역시 그 이유가 됐다. 하지만 한편으론 당대의 역사는 내게 기피하고픈 마음을 남기기도 했다. 일본을 비롯한 서양의 많은 국가들로부터 침탈당하던 시기이고, 이어서는 암울한 일제 강점기가 있었던 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적 감정에 베일에 쌓여있던 근대 우리나라의 모습은 인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인천은 예로부터 해상교통의 요지에 위치, 다양한 문화들이 만나는 곳 이였다. 차이나타운 역시 마찬가지로 많은 화교들이 정착하여 살던 터전답게 중국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물론, 과거의 모습보단 현대식으로 리모델링된 거리의 모습들이 아쉽긴 했지만 가로등, 가옥의 형태, 중화 식당은 물론 공갈빵이나 월병과 같은 전통음식을 파는 가게들은 차이나타운의 향기를 그대로 담는 듯했다.

개항장 한 켠에 위치한 근대 일본식 가옥들과 서양식 건물들도 근대의 모습들을 잘 담아낸다. 개중엔 내부를 카페로 리모델링해 운영하는 곳도 있어 건축물의 실내 모습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과거의 모습들이 생각보다는 많이 담겨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100년이란 시간에 걸쳐 그 모습들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지만, 개인적인 욕심으로 조금은 더 그 때의 모습이 남아있어 그토록 궁금해 하던 당시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체험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Ⅵ. 참고 문헌

- 인천 차이나타운의 관광 활성화 방안에 대한 연구

한대광, 인하대학교 행정대학원,[2007] [국내석사]

- 인천 차이나타운

김옥임 (Koreana (Korean), Vol.19 No.3, [2005])

- [건축] 인천, 차이나타운에 드리워진 가치의 함정

전진삼 (황해문화, Vol.40 No.-, [2003])

- [내가 읽은 책]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Korean Architecture Chinese Architecture Japanese Architecture

도연정(Do, Younjung) (建築, Vol.59 No.10, [2015])

사진 1~8 : 현장에서 직접 촬영







■ 작품설명 (개인의 경험을 가미한 설명을 부탁드려요0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위한 역사 유적지 답사 차원에서 살아 있는 근대 역사의 장, 인천 개항장을 다녀온 느낌들을 사진과 함께 스토리텔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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