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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자유공원 일대 현장학습 보고서

손창현
2019-10-24
조회수 214

2019 인천관광 스토리텔링 공모전 출품


■ 컨텐츠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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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인천 역사를 보여주는 시계      [사진 2] 예술가 창작지로 활용되고 있는 과거 창고             [사진 3] 대불호텔 재현


  인천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시계[사진 1]로부터 우리의 기행은 시작되었다. 이 시계는 12시부터 시계 방향으로 1883년, 1902년, 1995년, 마지막으로 2001년의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천항이 1883년 개항했고, 1902년 한 한국인이 최초의 여권을 가지고 하와이로 떠났으며, 이후 근대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인천하와이공업전문대학교(현. 인하대학교의 전신)를 세웠다고 한다. 1950년에는 인천상륙작전이 이루어졌고, 인천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를 바탕으로 한 맥아더 장군과 그 특공대의 이야기로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되기도 했다. 8시 방향에 있는 2001년도에는 인천공항이 개항되었으며, 인천역에서 노량진역으로 가는 철도가 개설되며 하늘과 땅과 바닷길이 다 열리는 기념적인 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시계 주위에는 창고형의 건물[사진 2]들이 있었는데, 현재 이는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드라마『드림하이』, 『도깨비』등의 출연지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창고의 건설은 항구 주변에 작은 어촌을 형성시켜 지금까지 남아있는 청국 조계지, 일본 조계지 등이 생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본 조계지 쪽으로 걷다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대불호텔[사진 3]’을 만날 수 있다. 인천항이 주요 항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때에 일본인과 중국인은 한국에 상주하며 무역을 했지만, 서양인들 중 일부는 단순히 선교의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이 있어 이들을 위한 숙박 장소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대불호텔이 세워진 것이었다. 과거의 서양인들은 한국에서의 선교를 도와줄 인부를 구하기 위해 이 호텔에 지내곤 했다.
  대불호텔을 지나서 가다보면 과거 은행건물들을 볼 수 있다. 일본인이 지은 은행으로는 일본제1은행, 일본18은행, 일본 56은행이 있으며, 일부는 <인천개항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 4] 갑문 설명 영상                  [사진 5] 우체사 모습 재현                [사진 6] 일본 제1은행 소개

  <개항박물관>에서는 갑문, 월미조탕, 우체사, 과거 인천의 모습, 제1은행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었고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개항박물관을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갑문에 대한 설명 영상[사진 4]이었다. 해설사님께서는 갑문의 원리를 설명해주셨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 바다에서 선박이 인천항으로 접근하여 갑문 사이의 수심을 바다의 수심과 같게 조절한 뒤, 외측(바다 측)의 갑문이 열린다. 이후 선박이 외측 갑문을 통과하여 갑문 내로 들어서면 외측 갑문을 닫는데, 이 때 갑문 사이의 수심을 갑거 내의 수심과 같도록 조절해야 한다. 갑문 사이와 갑거의 수심이 일치한 경우 내측 갑문을 열어 배는 갑거로 들어와 정박하게 된다. 선박의 출항 때에는 갑문의 개폐와 수심의 조절이 역순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갑문의 영상을 지나면 ‘월미조탕’에 대한 자료가 나온다. 당시 같은 항구였던 부산에는 온천이 있었고, 인천엔 온천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 관광객이 별로 없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인천시에서는 바닷물을 끌어와 끓인 후 직접 만든 것이 월미조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일본인들은 인천에서 온탕을 즐긴 후 월미도에서 시간을 보내다 서울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했다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다시 한 번 한 바퀴 돌면 그곳엔 최초의 우체부[사진 5]를 재현해 놓은 모습이 있다. 우편 사업을 재개한 1895년 당시엔 한성과 인천의 우체사체전부는 매일 9시에 각각 우체사에서 우체낭을 지고 동시에 출발했다고 한다. 지금의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서 만나 서로의 우편물을 교환하고, 이들은 5시 30분까지 본 우체사체전부로 복귀하였다.

 
   박물관의 끝자락에 가면 인천18은행을 재현[사진 6]해 높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 들어가기 전 문은 실제 은행의 금고였던 문을 활용한 것이며, 들어가면 인천 제1은행을 재현해 높은 건물의 모습과 금고 장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둘러보았던 제물포구락부는 서양인들의 단합장소로 신사들만 출입했던 곳이고, 숙녀들은 출입하지 못했던 곳이라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장으로도 활용되었으며, 이 역시 예술가들을 위한 장소로 지원되고 있었다.


  자유공원 주변의 고등학교에서 3년을 보냈던 나에게, 인천시 중구라는 동네는 매우 익숙했지만 모르는 것이 더 많았던 곳이었다. 또한 구도심이라고 생각했던 자유 공원 일대에 이렇듯 관광자원이 많았다는 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역사적인, 그리고 관광학도로서의 시선으로 나의 고향 인천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교수님과 해설사님께 감사드린다.













■ 작품설명 (개인의 경험을 가미한 설명을 부탁드려요0



자유공원 주변의 고등학교에서 3년을 보냈던 나에게, 인천시 중구라는 동네는 매우 익숙했지만 모르는 것이 더 많았던 곳이었다. 또한 구도심이라고 생각했던 자유 공원 일대에 이렇듯 관광자원이 많았다는 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역사적인, 그리고 관광학도로서의 시선으로 나의 고향 인천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교수님과 해설사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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