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작(2019) 인천 속 작은 해외여행 '차이나 타운'

jin
2020-10-20
조회수 1551

2019 인천관광 스토리텔링 공모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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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빠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이 아파서 순식간에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장례식을 치르기까지의 시간은 화살같이 빨랐다. 아빠는 할머니한테서 받은 모계유전으로 간 경화를 10년 넘게 앓으셨다. 6년 전부터는 간암이 발병해서 간동맥 화학 색전술을 여러 번 하시며 간암과 끊임없이 싸우셨다. 그렇게 끝이 안 보이는 터널처럼 계속될 것 같은 아슬아슬한 평화는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아빠의 간은 작년 겨울부터 더 버티질 못했고 의사는 기어이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이대로 가면 2월에 돌아가신다는 충격적인 선언이 이어졌고 우리 가족은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아빠는 힘겹게 2월을 넘겼고 우리 모두 괜찮을 거라고 마음을 속였고 현실을 속였다. 그러나 아빠는 3월에 급격하게 나빠졌고 결국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셨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서 딱 일주일 되던 날 아빠는 하늘의 별이 되어 할머니 할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다.

  사실 주위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넨 괜찮은 거야. 미리 준비했잖아.”

  이건 거짓말이다. 괜찮은 건 없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갑자기 죽은 사람보다 괜찮다는 것도 거짓이다. 그저 장례를 준비할 여유가 있다는 것 외에 황망함은 모두 똑같다. 그렇게 우리는 집안의 가장을 떠나보내고 모두 넋을 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봄을 우리는 힘겹게 보내고 어느덧 여름이 왔다. 모두 일을 하거나 집안에서 넋을 놓고 있는 게 보기 힘들었다. 문득 나는 인천 ‘차이나타운’이 가고 싶어졌다. 친한 지인들과 몇 년 전 인천차이나타운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즐거웠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차이나타운은 인천역 바로 맞은 편에 크고 화려한 빨간 문이 있어 금방 눈에 보인다. 화려한 중국식 문을 지나면 작은 언덕이 나오는데 그 언덕이 차이나타운의 시작이다. 예전에 왔을 때는 조금만 올라가면 왼쪽으로 ‘누가 크래커’ 파는 상점이 있었다. 지금은 다른 매장으로 바뀌었지만, 언덕을 올라가면 길게 늘어선 각종 가게가 있어서 누가 크래커나 월병을 쉽게 살 수 있다. 언덕 위에는 가장 화려한 중국집인 ‘연경’이 보인다. 그 중국집은 몇 년 전 드라마에 나왔던 곳으로 지인들과 방문했을 때도 그곳으로 갔었다. 그때 ‘하얀 짜장’을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았다.

  나는 원래 매운 걸 잘 못 먹는다. 매운걸 잘 못 먹으면 배가 아파 집에서 데구루루 구를 정도로 속에서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최대한 담백한 것으로 찾는데 ‘하얀 짜장’이 바로 담백한 짜장이어서 나에게 딱 맞는 음식이다. 짜장만 먹기 아쉽다면 딤섬도 좋다. 길거리에 나오면 중국식 만두를 파는 곳도 구석구석 있다. 일반적인 만두보다 맛있고 피도 얇고 국물도 좋아서 엄청 많이 먹었다.

  외가댁이 대부분 인천에 있고 나도 인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전부터 고향 같은 곳이 인천이다. 차이나타운 방문했다가 시간이 나면 이모 댁에 방문해도 좋겠다는 생각과 몇 년 전 먹은 하얀 짜장 생각에 가족을 설득해 자동차를 가지고 갔다. 동생은 차이나타운 근처에 공영주차장을 검색했다. 생각보다 주변에 공영주차장이 꽤 있어서 주차하기도 나쁘지 않았다. 바로 옆은 아니지만 모두 5분에서 10분 거리에 있어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우리 식구는 그렇게 인천차이나타운에 도착했다. 내가 몇 년 전 간 ‘연경’에 들어가니 사람이 많아서 자리가 있는 위층으로 계속 올라갔다. 하얀 짜장과 탕수육 그리고 짬뽕을 시켜 먹었다. 몇 년 전 그 맛처럼 하얀 짜장은 여전히 담백한 맛을 자랑했다. 일반적인 까만 짜장도 맛이 있어서 우리 식구는 모두 맛있게 먹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뭐하나 맛있게 먹은 게 없는데 오랜만에 실컷 먹었다.

  배고픔이 해결되자 그제야 주변이 눈에 보였다. ‘연경’ 옆으로 계단이 있는데 위로 올라가면 돌로 만들어놓은 십이지신이 있다. 우리 식구는 각각의 띠에 맞게 십이지신과 사진을 찍었다. 위로 더 올라가면 산을 끼고 산책로가 있어서 소화를 시키는데 알맞다,

  잠시 둘러본 후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커피숍에서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빠와의 추억 그리고 후회, 서로에 대한 걱정까지 쭉 풀어놓고 이야기했다. 아마 차이나타운에 시간 내서 오지 않았다면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은 너무 익숙한 공간이라 너무 아프고 때로는 애써 외면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장소에서 다양한 것들을 먹고 듣고 보면서 마음이 풀어져 좋은 이야기들이 오고 갈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커피를 다 마신 후에야 길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좀 더 걷다 보니 다양한 상점이 즐비했다. 중국에서 파는 ‘탕후루’부터 작은 인형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마치 외국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원래 우리 식구는 여행을 좋아해서 매년 빠지지 않고 갔는데 올해는 가지 못했다. 진짜 외국은 아니지만, 차이나타운은 외국 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이국적이다.

  그렇게 걷다 보니 작은 사원이 보였다. 이 전에 차이나타운을 방문했을 때는 못 봤는데 이번에는 눈에 보였다. 정말 작은 사원이었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나는 향을 들고 작은 기도를 올렸다.

  ‘우리 식구가 건강하게 해주시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편하게 해주세요.’

  작은 소원을 빌고 돈을 넣은 후 빨간 리본에 소원을 쓰고 매달았다. 뭔가 마음이 편해지며 안식이 찾아왔다.

  그리고 지난번에도 그렇듯 이번에도 누가 크래커를 샀다. 시중에 파는 것보다 더 부드럽고 크기도 크고 맛있다. 대만에 직접 가거나 해외 직구를 하기 전까진 부드러운 누가 크래커를 먹기 힘들다. 그러나 인천차이나타운 누가 크래커는 대만 누가 크래커와 거의 비슷한 맛을 낸다. 나는 ‘누가 크래커’를 하나 사서 식구들에게 후식으로 나눠주었다.

  바삭한 과자 안에 숨겨진 쫀득하고 달달한 누가가 입에 쫙 감기며 기분을 좋게 해준다. 식구들도 다들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누가 크래커를 하나씩 손에 쥔 채로 차이나타운 외곽으로 나왔다. 외곽 쪽으로 가니 중국 전통 복장 ‘치파오’와 ‘찻잔’을 팔았다. 심지어 그 건물은 일제 강점기 건물로 일본 전통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눈을 돌려 반대편 골목을 보면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 꽤 눈에 보인다. 인천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근현대 건축물이 꽤 남아있어서 역사를 좋아하고 건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면 한 번 와볼 만하다. 시간이 없어서 눈으로 훑고 그대로 돌아서야 해서 아쉬웠다. 다음번을 기약하며 우리는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인천의 작은 중국은 우리 식구를 편하게 해주었다. 우중충한 우리 식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번에는 미처 가지 못한 인천 근현대사 건물을 둘러봐야겠다.






■ 작품설명 (개인의 경험을 가미한 설명을 부탁드려요0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울해 있는 식구들을 설득해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작은 여행을 갔습니다. 하얀 짜장과 누가 크래커를 먹고 사원을 들려 소원을 빌면서 마음의 위안과 함께 작은 여행을 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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