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먹으러 가자고?” “아니. 차이나타운 가자고” 잠시 고민했다. 내가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딨냐면서, 그게 그 말이지 짜장면 먹을 거 아니면 차이나타운을 갈 이유가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래도 고민하는 시늉이라고 해야 했기에 끙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벚꽃 피면 가자” 나름 현명한 답변이었다. 차이나타운 옆 자유공원은 봄이면 벚꽃이 예쁘니까. 지금은 추우니, 나름 다음을 기약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벚꽃 좋지! 근데 그건 계절 타잖아”
그래서 결국 가게 되었다. 수인선의 끝과 시작인 인천차이나타운. 그녀는 연신 내 얼굴을 살폈다. 자취방에서 나오지 않는 딸을 겨우 밖으로 끌어내 잘 먹는지, 잘 입는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싶겠지만 꾹꾹 삼키고 말없이 얼굴을 살폈다. “갑자기 웬 차이나타운” 그녀가 자꾸 쳐다보니 절로 퉁명스러운 말투가 나왔다. 취준생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나 바쁜 거 모르냐고 이어서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깐 좋지 않냐는 말에 차마 그런 말은 나오지 못했다. 차이나타운이 우리 모녀에게 무슨 특별한 장소냐 누가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매년 오는 곳도 아니고, 일부러 찾아서 오는 곳도 아니다. 자장면 먹을 때나, 인천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가고 싶은 장소 정도. 차이나타운은 딱 그랬다. 그래서 난 그녀가 날 이곳으로 데려온 다른 이유가 분명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학교 졸업했으니 본가로 오면 안 돼? 엄마 외로워’ ‘그래도 취업 준비하려면 학교 근처가 편해 자취방 계약도 남았고’ 예전 대화를 떠올렸다. 졸업하고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그녀는 외로워했고, 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본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비슷한 대화가 이번에도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미리 답변을 준비했다. 그래도 아직은 안 내려가려고……. “여기야 여기!” 상상의 대화 중인 내게 그녀가 이끈 곳은 어느 계단이었다. 그녀는 계단 앞에 날 세우고 좌우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는 일본식 건물, 이쪽은 중국식 건물” “응?” “자세히 봐봐 건물 양식이 달라” “건물? 아 그래서 계절 안 탄다고 한 거구나” “청일조계지 경계 계단” “여기가 그거야?” 그녀는 대답 대신 석등을 왔다 갔다 쳐다보았다. 등도 좌우로 모양이 달랐다. 난 계단에 올라서면서 좌우를 살펴보았다. 서로 다른 건축양식이 이 계단을 중심으로 보였다. 차이나타운에 많이 왔었지만, 건물을 바라볼 정도로 유심히 본건 아니었기에 이런 차이가 있는 줄 몰랐다. 뒤돌자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신기하지?” 그리고 그녀가 이끈 곳은 역시 짜장면집이었다. 맛있게 먹고서 우리는 헤어졌다. 난 자취방으로 그녀는 우리 집이었던 본가로. 올라오는 전철에서 난 그 계단을 생각했다. 그래서 그 계단이 어쨌는데? 의문이 머리 위를 떠다녔다. 결국 자장면 먹자고 간 거지? 속았단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문자가 왔다. 지원한 회사인 줄 알았는데 그녀였다. 실망하면서 문자를 확인했다. “계단을 공유한다?” 그리고 첨부된 사진 한 장. 청일조계지 계단에서 좌우를 열심히 살피는 나. 이건 또 언제 찍었대. 픽 웃음이 나왔다. 엄지와 검지로 확대해 오른쪽 건물을 왼쪽 건물을 다시 보았다. 신기하긴 했다. 같은 계단을 두고 좌우 대비되는 건물과 석등. 그런데 우리라니? 그리고 사진 한 장이 더 왔다. 계단 앞에서 좌우를 열심히 살피는 그녀. 나랑 갔을 때가 아닌 다른 날이다. 뒷모습인데 서서 좌우를 살피는 모양새가 꼭 모녀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청일조계지 계단에 대해 설명 듣고 내가 떠올랐던 것이다. 공유라니, 퍽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면과 면이 만나면 모서리가 된다. 그리고 면과 면은 같은 모서리를 공유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날 엄마는 짜장면 때문에 날 차이나타운에 데려간 게 아니었다. ‘엄마 난 모서리 인생이야.’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게 엄마는, 모서리가 공유하고 있는 면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일본 건물과 중국 건물이 같은 계단을 공유한 신기한 그 모습이, 엄마랑 내가 다른 날 같은 포즈로 계단을 서 있는 그 모습이. 내가 모서리지만 엄마와 내 삶은 공유한다는 점이. 엄마가 더 낭만적이네 차이나타운은 이제 우리 모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
2019 인천관광 스토리텔링 공모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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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먹으러 가자고?”
“아니. 차이나타운 가자고”
잠시 고민했다. 내가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딨냐면서, 그게 그 말이지 짜장면 먹을 거 아니면 차이나타운을 갈 이유가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래도 고민하는 시늉이라고 해야 했기에 끙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벚꽃 피면 가자”
나름 현명한 답변이었다. 차이나타운 옆 자유공원은 봄이면 벚꽃이 예쁘니까. 지금은 추우니, 나름 다음을 기약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벚꽃 좋지! 근데 그건 계절 타잖아”
그래서 결국 가게 되었다. 수인선의 끝과 시작인 인천차이나타운. 그녀는 연신 내 얼굴을 살폈다. 자취방에서 나오지 않는 딸을 겨우 밖으로 끌어내 잘 먹는지, 잘 입는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싶겠지만 꾹꾹 삼키고 말없이 얼굴을 살폈다.
“갑자기 웬 차이나타운”
그녀가 자꾸 쳐다보니 절로 퉁명스러운 말투가 나왔다. 취준생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나 바쁜 거 모르냐고 이어서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깐 좋지 않냐는 말에 차마 그런 말은 나오지 못했다.
차이나타운이 우리 모녀에게 무슨 특별한 장소냐 누가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매년 오는 곳도 아니고, 일부러 찾아서 오는 곳도 아니다. 자장면 먹을 때나, 인천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가고 싶은 장소 정도. 차이나타운은 딱 그랬다.
그래서 난 그녀가 날 이곳으로 데려온 다른 이유가 분명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학교 졸업했으니 본가로 오면 안 돼? 엄마 외로워’
‘그래도 취업 준비하려면 학교 근처가 편해 자취방 계약도 남았고’
예전 대화를 떠올렸다. 졸업하고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그녀는 외로워했고, 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본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비슷한 대화가 이번에도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미리 답변을 준비했다. 그래도 아직은 안 내려가려고…….
“여기야 여기!”
상상의 대화 중인 내게 그녀가 이끈 곳은 어느 계단이었다. 그녀는 계단 앞에 날 세우고 좌우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는 일본식 건물, 이쪽은 중국식 건물”
“응?”
“자세히 봐봐 건물 양식이 달라”
“건물? 아 그래서 계절 안 탄다고 한 거구나”
“청일조계지 경계 계단”
“여기가 그거야?”
그녀는 대답 대신 석등을 왔다 갔다 쳐다보았다. 등도 좌우로 모양이 달랐다. 난 계단에 올라서면서 좌우를 살펴보았다. 서로 다른 건축양식이 이 계단을 중심으로 보였다. 차이나타운에 많이 왔었지만, 건물을 바라볼 정도로 유심히 본건 아니었기에 이런 차이가 있는 줄 몰랐다. 뒤돌자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신기하지?”
그리고 그녀가 이끈 곳은 역시 짜장면집이었다. 맛있게 먹고서 우리는 헤어졌다. 난 자취방으로 그녀는 우리 집이었던 본가로. 올라오는 전철에서 난 그 계단을 생각했다. 그래서 그 계단이 어쨌는데? 의문이 머리 위를 떠다녔다.
결국 자장면 먹자고 간 거지? 속았단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문자가 왔다. 지원한 회사인 줄 알았는데 그녀였다. 실망하면서 문자를 확인했다.
“계단을 공유한다?”
그리고 첨부된 사진 한 장. 청일조계지 계단에서 좌우를 열심히 살피는 나.
이건 또 언제 찍었대. 픽 웃음이 나왔다. 엄지와 검지로 확대해 오른쪽 건물을 왼쪽 건물을 다시 보았다. 신기하긴 했다. 같은 계단을 두고 좌우 대비되는 건물과 석등. 그런데 우리라니?
그리고 사진 한 장이 더 왔다. 계단 앞에서 좌우를 열심히 살피는 그녀.
나랑 갔을 때가 아닌 다른 날이다. 뒷모습인데 서서 좌우를 살피는 모양새가 꼭 모녀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청일조계지 계단에 대해 설명 듣고 내가 떠올랐던 것이다.
공유라니, 퍽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면과 면이 만나면 모서리가 된다. 그리고 면과 면은 같은 모서리를 공유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날 엄마는 짜장면 때문에 날 차이나타운에 데려간 게 아니었다.
‘엄마 난 모서리 인생이야.’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게 엄마는, 모서리가 공유하고 있는 면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일본 건물과 중국 건물이 같은 계단을 공유한 신기한 그 모습이, 엄마랑 내가 다른 날 같은 포즈로 계단을 서 있는 그 모습이. 내가 모서리지만 엄마와 내 삶은 공유한다는 점이.
엄마가 더 낭만적이네
차이나타운은 이제 우리 모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 작품설명 (개인의 경험을 가미한 설명을 부탁드려요0
경계 계단에 대해 새로운 추억이 생겨, 용기를 얻게 된 경험을 글로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