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작(2019) 애벌레

지은
2020-10-20
조회수 1313

2019 인천관광 스토리텔링 공모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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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수능 결과가 나오고 학교 발표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는데, 불합격이 뜰 때마다 나는 불안함을 떨치지 못했다. 마지막 발표만을 남겨뒀을 때였다. 모든 시험이 끝났지만 여전히 나는 수험생이었고 책들로 어지럽혀진 내 방은 그동안의 노력을 증명하는 듯했다. 이상하리만큼 허전하고 무료한 일상이 어색하게 다가왔다. 매일을 반복하는 수레바퀴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를 그토록 바라왔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삼 년의 시간을 증발시켜버린 것처럼 그 긴 시간 속에서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시험이 끝나고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연락을 피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사실 누구보다 먼저 연락해서 ‘나는 이랬는데, 너는 어땠어?’라는 심심찮은 위로와 덕담을 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질 않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요즘 뭐해?”


순간 친구의 넉살스러운 말투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동안 궁금하면서도 복잡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떨쳐지는 듯했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는지 그동안 참고 있던 것들을 토해내듯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다시 찾아가자던 그곳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 해의 12월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는 어느새 작년 이맘때쯤 겨울로 돌아가 있었다.



우리는 고3을 앞두고 있었고 그날은 월미도에 놀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인천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터라 월미도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장소였다. 추운 겨울바람이 불었지만 월미도 거리를 빛내는 형형색색 간판들과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추위를 잊게 했다.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거리를 걷다가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엄마와 아빠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아이, 할머니의 조금 느린 발걸음에 맞춰 걸어가시는 할아버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 젊은 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멀찍이 길을 따라 줄지어있는 포차들을 보며 ‘우리도 언젠가 갈 수 있겠지?’, ‘꼭 다시 오자. 어른 돼서’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많을까?’

일 년의 시간이 더 흐르면 우리도 어른이 된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꼭 좋은 어른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멋진 사람이 되리라고 다짐했다. 월미도 거리의 밤은 아름다웠고 우리는 사진 한 장으로 그 시간을 남겼다.




‘그때 기억나? 우리 저쪽 길 걸으면서 사진 찍고 얘기하고..,’

‘어른 되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때는 그때의 힘든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삼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우리는 월미도 거리의 한 포차에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도 한참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생각해보면 스무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했다.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 어느새 세 번의 겨울이 흘러 있었다. 우리는 고3을 앞둔 학생에서 스무 살 대학생으로, 그리고 어른이 되어 있었다. 무색하리만큼 걱정에 아무것도 못했던 나는 마지막으로 발표된 학교에 입학했고, 친구는 유학을 마치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취업을 앞둔 사회 초년생이 되었고 또다시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삼 년 만에 다시 방문한 월미도는 친구와의 추억이 스며든 그날의 시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곳을 오면 거리의 불빛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그때의 추억과 함께 용기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이 날도 우리는 서로에 의지하며 또 다른 다짐을 하고 용기를 얻었다. 우리는 허물을 벗고 날아갈 준비를 하는 작은 애벌레의 모습 같았다.




■ 작품설명 (개인의 경험을 가미한 설명을 부탁드려요0


누구에게나 마음 가는 장소는 하나씩 있습니다. 우리를 과거의 추억에 젖게 만드는 노래나 물건이 있듯이 저에게 월미도는 그런 곳입니다. 열여덟을 지나 열아홉이 되고 스무 살, 그리고 진정한 어른이 되기까지 짧은 시간 가장 긴 여정을 마친 우리는 다시 만나 그 거리에서 추억을 회상했습니다. 작은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날아갈 준비를 하는 과정은 우리가 겪었거나 겪을 많은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또한 그 과정을 거칠 때마다 한 장소에서 용기를 얻고 서로를 의지한 우리의 모습은 여느 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월미도는 저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기억이 되고 좋은 추억으로 남는 장소라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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