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작(2019) 약 속

강성찬
2020-10-20
조회수 1718

2019 인천관광 스토리텔링 공모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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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날이 좋을 때면 나는 가끔 사무실 문을 닫고 동인천 나들이에 나선다. 내가 가는 곳은 대략 정해져 있다. 우선 신포시장에 들러 점심을 먹는다. 인심 좋은 사장님이 내준 푸짐한 밑반찬에 민어탕을 곁들여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서는 게으른 걸음으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신포시장을 가로지른다. 그렇게 홍예문을 지나 차이나 타운에서 눈요기를 하고는 불려 나온 친구들과 삼치골목에서 탁주 한잔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


이 평범하고 소박한 시간 중 예전 인영극장 근처 앞에서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 하나 있다.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것이다. “○○○야 잘 있지?"" ◇◇◇형 건강하세요?”그렇게 별 내용 없이 안부를 묻고 건강을 기원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이 뜬금없는 전화에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30년 전쯤 있었던 그들과의 약속이 기억 나서다.


1989년, 인천으로 이사 온 나는 계산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당시 인천 교구 김민주 신부님의 지도하에 주일학교 교사모임이 자주 있었는데 또래 사내 녀석 몇이 친해져 금세 형 동생을 하며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됐다. 90년 1월 3당 합당 사건이 일어나며 정부와 학생들의 갈등이 첨예해졌고 덩달아 시위도 격렬해졌다. 당시 우리들도 3당 합당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함께 시위에 참석하기로 약속했다.


동인천에 살던 친구가 “인영극장”근처에 아모레 다방이 있는데, 혹시 흩어지면 거기서 모이자.”라고 제안을 했고 다들 시위 도중 혼자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모이기로 약속을 했다. 거리의 가로수 잎이 푸릇푸릇 예쁘게 자라고 있던 것으로 봐서 4월 중순쯤이었으리라. 지하철을 타고 시위 현장으로 향하는데, 경찰이 동인천역에서 정차를 못 하게 해서 한 정거장을 지나 내릴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회 장소를 향해 걷는데 멀리 경찰들이 학생들을 검문하는 것이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흩어져서 인성여고 정문에서 만나자.”라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검문을 피해 인성여고 정문에 도착해보니 두세 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검문에 걸릴 것이리라. 답동성당에 가니 시위대가 집결해 이미 성당이 가득했었다.


두 어 시간의 시위를 무사히 마치고 나서 몇몇 사람들은 다시 인천대로 이동해 연장 시위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친구들과 제물포역 뒤편에서 보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져 각자 이동했다. 그러나 제물포역 뒤편에 모여 보니 또 두세 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이동 중 검문에 단속돼 경찰차에 탑승했으리라. 걱정되는 마음을 달래고 진압을 위해 출동한 경찰들과 대치를 시작했다. 뜨거운 구호 소리 속에 밀고 밀리는 공방이 계속되던 가운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내 눈앞에 전투경찰대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 너머 시위대가 보이는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시위 대열을 이탈해 전투경찰대의 진영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와버린 것이다.


진압 경찰들의 관심조차 얻지 못한 나는 근처를 잠시 방황하다 친구들과 약속한 다방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동인천으로 갔다. 그런데 도착하고 나니 도무지 다방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인영극장도 보이지가 않았다. 동인천을 한참 돌았는데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곤란하던 중 눈앞에 부동산사무소가 보이기에 문을 열고 불쑥 들어갔다. 혼자 부동산을 지키고 계시던 중년의 사장님이 인기척에 나를 보시더니 말을 건네신다.

“학생 무슨 일이지?”

“아저씨 여기 다방이 어디 있어요?”

사장님은 기가 찬 표정으로 나를 보시며 다시 물으셨다.

“이 사람아 이 동네에 다방이 오십 개는 돼! 어느 다방을 찾는 건데?”

“아저씨 실은 제가 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다방 이름이 기억이 안 나요.”사장님은 어이없다는 웃음으로 나를 보시더니 말하신다.

“학생 그 다방 이름이 한국말이야? 외국말이야?”

“외국말인데요?”

“그럼 영어야? 불어야?”

“불어 같은데요?”

이 말을 들은 사장님이 책상 밑에서 달력만 한 서류철을 꺼내더니 탁자 위에 펼쳐주신다. 10여 년간 중개업소를 운영하며 손으로 그리셨다는 지도 위에는 건물들이 그려져 있고 건물마다 가게 이름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사장님은 거기서 일일이 점포를 찾아가면 불어로 된 다방 이름을 불러주신다.

“◯◯◯?”

“아닌데요.”

“□□□?”

“아닌데요.”

“아모레?”

“아 맞아요. 그거 같아요.”


사장님은 부동산 밖으로 나와 내게 아모레 다방으로 가는 길을 찬찬히 알려 주셨다. 사장님께 꾸벅 인사를 드리고 걸음을 재촉하니 잠시 후 드디어 아모레 다방이 보인다. 그제야 잡혀갔을 친구들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경찰버스 안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내가 창피해졌다.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다방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는데 구석에서 동인천에 사는 친구가‘◯◯아 여기야! 여기!’ 하며 내게 손을 흔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친구의 주위로 다른 친구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있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사정을 들으니 검문이 너무 까다로워 중간에 포기하고 바로 아모레 다방으로 왔단다. 끝까지 시위대열을 지키고 왔다며 나를 대단하게 여기는 그들에게 차마 대열에서 벗어난 후 다방을 못 찾고 헤매다 늦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날 우리는 삼치 골목에서 무사함을 자축하는 술 몇 잔을 마신 후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 후 30년 지났고 모두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그사이 내게는 날이 좋을 때면 동인천으로 나들이 가는 습관이 생겼다. 내 첫 동인천 나들이는 어느 봄 유난히 그 아모레 다방을 다시 가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어렵게 찾은 자리에는 이미 다른 상가가 들어와 있었다. 아모레 다방을 찾기 위해 시작했던 동인천 나들이는 아모레 다방이 없어졌음에도 계속됐다. 크게 변하지 않은 동인천 거리를 걸을 때면 여드름 가득한 20세의 청년들이 내 곁에 서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동인천과 신포시장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 같다. 만약 동인천과 신포시장에 부동산 개발의 바람이 불었다면 달라졌으리라.


얼마 전부터“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문제가 됐다. 구도심을 개발해 멋진 마천루를 만들어 내지만, 결과적으로 긴 세월 살던 이들이 오랜 터전에서 내쳐지기 때문이다. 만약 부동산 개발 이익만 생각한다면 언젠가 동인천과 신포시장도 지금 모습을 잃을 것이다. 그러면 그곳에 살던 사람들과 함께 우리의 기억도 같이 사라질지 모른다. 내가 인천을 삶의 터전으로 생각한 것은 높은 빌딩이나 고급 아파트 때문이 아니다. 인천 사람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 때문이다. 그 기억들이 나를 인천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렇듯 인천을 내 터전으로 삼게 한 그 친구들과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은 거리가 바로 동인천과 신포시장이다. 나는 이 가을도 동인천과 신포시장을 걸으면 친구들이 생각한다. 내 기억 속에서, 동인천과 신포시장의 내 친구들은 아직 20세 청년이다


거리든 노래든 기억이 담기면 사람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내게는 동인천과 신포시장이 그렇다. 내 추억이 영원히 남을 수 있도록, 동인천과 신포시장의 모습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그날 우리의 약속이 그 거리의 가로수 잎들만큼이나 풋풋했다는 근거 없는 아름다운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가을, 다들 시간을 내서 동인천과 신포시장을 걸어보자. 크게 변하지 않을 거리를 걷다가 문득 옆을 보면 각자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당신과 함께 걷고 있을지 모른다.

                                                                                                                                                                     -끝-



■ 작품설명 (개인의 경험을 가미한 설명을 부탁드려요0

                                                                                                 -약            속-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한 것은 건강과 기억인듯합니다. 많은 기억은 도시의 외관과 함께 하기도 합니다. 개발로 인해 멋진 모습을 가진 화려한 도시가 멋집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거리가 주는 감동도 그에 못하지 않게 멋집니다. 동인천과 신포시장은 다행히 개발에서 벗어서 아직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동인천과 신포시장의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며 각자의 기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인천으로 이사 와 인천을 사랑하게 된 것은 도시의 화려한 모습이 때문이 아니라 인천 사람들과의 좋은 기억 덕분입니다.

인천으로 이사 온 어느 봄, 친구들과의 약속에 얽힌 기억이 인천을 사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기억의 많은 부분인 동인천과 신포동에 있기에, 신포시장과 동인천이 지금의 모습을 오래 간직하기 바라며 제 기억을 남깁니다. 저 말고도 동인천과 신포시장에 아름다운 기억을 가진 분들이 많기를 바라며 그날의 약속에 대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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