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장려상 - (2019) 가족을 이어주는 곳, 동인천 삼치거리

정일용
2020-11-03
조회수 1966

2019 인천관광 스토리텔링 공모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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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승낙 받으러 아내와 함께 부모님을 찾았을 때, 두 분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버지야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애주가시라 그렇다 치더라도, 어머니께서 그렇게 술을 많이 드실 수 있다는 건 미처 몰랐었고, 그래서 조금 놀랐었다. “저를 떠나 보내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하고 농담을 던졌더니 아버지는 웃으시며 “떠나 보내는 게 아니라 가족이 하나 더 늘어서 좋다. 그것도 발랄하고 예쁜 가족이…” 하고 답하셨다. 두 분 다 정말 기분 좋게 우리 결혼을 축하해 주셨고, 난 그런 우리 부모님이 참 고마웠다.

 올해 내 나이는 서른 여섯이고,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지는 이십사 년이 지났다. 사고로 천애고아가 될 뻔 한 조카를 아들로 맞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 때 부모님은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다. 만약 내게도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부모님과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날 새 식구도 들이지만 않았어도 조금 더 여유 있게 살 수 있었을 부모님은 항상 부족한 생활비에 고생하셨다. 그러면서도 사춘기 아들이 눈칫밥이라도 먹게 될까, 끙끙대는 일은 두 분만의 은밀한 비밀로 남기려 노력하셨다. 눈치가 제법 빨랐던 내가 문제집 살 돈이 없어 주저주저하면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쌈짓돈을 풀어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 넣어 주셨고, 아버지는 출근 길에 나를 조용히 불러 친구들에게 얻어먹고 다니기만 하면 안된다며 몰래 용돈을 주셨었다.

 나는 죄송스러움을 과묵으로 표현했고, 부모님은 아들의 과묵함을 당신의 탓으로 생각했다. 특히 아버지의 경우는 당신의 무뚝뚝함이 아들을 더욱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기셨던 것 같다. 아들이 세운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셨지만, 내 호응은 부모님의 기대를 채울 정도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아버지와 둘이 건강검진을 위해 동인천의 한 병원을 찾았던 날이다. 검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버지의 시선이 어느 오래된 가게를 향해 있었다. 평소라면 모르는 척 지나쳤을 텐데 아버지의 시선이 여느 때와 다르게 짓궂은 장난기를 머금고 있어서 여쭈었다. “어디를 그렇게 보고 계세요?” 아버지는, “어, 저기 저 가게가 네 엄마랑 처음으로 간 식당이야.” 하고 답하셨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같이 저기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고 하셨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왕돈까스랑 떡볶이를 파는 분식집만 알았지 이렇게 삼치를 파는 거리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여기가 아빠가 너만 할 때도 있었으니까 역사가 깊은 곳이야. 그리고 아빠한테는 진짜 특별한 곳이지. 엄마와의 추억이 있는 곳이니까. 그 얘기 좀 더 해줄까?”

 나는 평소와 다른 아버지의 해맑은 표정을 보니 부모님의 연애담이 궁금해졌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랬다. 결혼 전, 주변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던 아버지는 정작 당신 마음에 드는 짝을 찾지 못하셨고, 어느 퇴근 길, 우연히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게 되었다. 그냥 보내면 평생 후회하며 살 것 같아 용기를 내어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고, 오케이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때 아버지가 아는 식당이라고는 퇴근길에 동료들과 소주 한 잔 걸치던 이 삼치 가게 밖에 없었고, 식사 장소로 여기를 택했다. 아버지는 식사 자리에서 속으로 더 분위기 있는 곳으로 갔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여자(어머니)는 오히려 아버지의 꾸밈 없는 면이 좋아 보여 진지한 만남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삼치 가게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던 아버지와 나의 관계도 둘만의 삼치 가게 저녁 식사를 계기로 많이 부드러워질 수 있었다.

 나도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이 곳을 종종 찾았다.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첫 번째 식사 자리는 아니었다. 맛집 탐방을 즐겨 하던 아내에게 부모님의 추억이 담긴 이 곳을 추천했고, 잘 구워진 삼치 한 젓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아내는 이 가게의 광팬이 되었다.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하고, 입에 넣으면 꽈득꽈득한 식감이 씹는 맛을 주다가도 어느 샌가 사르르 녹아버려 당황하게 하는 맛’이라고 했다. 삼치 가게는 부모님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 부부를 더 가깝게 해 주었다.

 지금 우리 부부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십구 개월 딸이 있다. 요즘 들어 말이 부쩍 늘었고, 나들이를 갈 때면 정신없이 걷고 뛰느라 바쁘다. 딸에게 모든 것이 처음인 것처럼 나도 아버지가 처음이라 힘들 때가 많다. 딸이 이성보단 본능에 충실한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생떼를 부릴 때나, 위험한 행동을 할 때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오곤 한다. 아기를 재우고 육아 퇴근 시간을 맥주 한 잔으로 달래다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다.

 엊그제 TV속 지나가는 채널에서 삼치가 제철을 맞았다는 장면을 보았다. 다음 주말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두 돌배기 딸과 함께 모두 다섯이 삼치 거리를 찾아야겠다.

아내는 여전히 그 맛을 즐길까, 사랑스런 내 딸은 생애 첫 삼치 구이를 잘 먹을 수 있을까, 또 아버지는 그 때처럼 해맑은 표정을 지으실까,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빛나는 눈을 하실까.


■ 작품설명 (개인의 경험을 가미한 설명을 부탁드려요0


부모님을 이어 준 삼치 가게는 다시 나와 아내의 특별한 장소가 되었고, 이제 딸에게도 특별한 장소가 될 것이다. 남들과 조금 다른, 특별한 관계로 엮인 부모님과 나. 어릴 때는 몰랐지만 내게도 자식이 생겨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다. 어떤 가족이든 함께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그럼에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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